제로 웨이스트 여행을 실천하다 보면, 가장 자주 부딪히는 문제가 있다.
생필품이 떨어졌을 때, 어디서 어떻게 ‘포장 없이’ 구입할 수 있는가이다.
특히 고체 치약, 샴푸바, 세제 같은 품목은
리필숍이 없는 여행지에서는 일회용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 쉽다.
하지만 독일 베를린에서는 완전히 다른 구조가 존재했다.
기차역, 대학교, 공공 도서관 등에 설치된 **리필 자판기(Refill Automat)**가
여행자와 시민 모두에게 시간과 장소 제약 없이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 글은 그 자판기를 실제로 사용하며 경험한
자동화된 제로 웨이스트 여행 실천 루틴을 기록한 체험기다.
1. 제로 웨이스트 여행자에게 ‘리필 자판기’가 필요한 이유
제로 웨이스트 여행을 실천하다 보면,
‘리필’은 단순히 생필품을 덜어 쓰는 방식이 아니라
실천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한 핵심 구조가 된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익숙한 벌크숍이나 리필마켓을 찾기 어렵고,
특히 늦은 저녁이나 주말에는 실천이 막히기 일쑤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 전역에 리필 전용 자동판매기(Refill Automat)를 설치하는 실험적 프로젝트가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베를린 시와 지역 사회적 기업이 협업하여 도입한 이 자판기는,
고체 샴푸, 천연 세제, 고체 치약, 생필품 정제 등 포장 없는 제품을 소량 구매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특히 제로 웨이스트 여행자에게 이 시스템은 의미가 크다.
- 시차와 상관없이 24시간 실천을 유지할 수 있고
- 개인 용기를 사용할 수 있는 구조가 있으며
- 불필요한 추가 소비 없이 필요한 만큼만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지에서의 소비를 실천으로 전환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루틴 도구가 된다.
2. 제로 웨이스트 여행 루틴의 자동화 – 베를린 리필 자판기 사용기
프리드리히스하인(Friedrichshain) 지구에 위치한 한 지하철역에서
나는 처음으로 Refill Automat 자판기를 경험했다.
첫인상은 깔끔하고 무척 직관적이었다.
자판기 좌측에는 유리병·금속 용기 등 사용 가능한 개인 용기 유형이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었고,
화면에는 “용기를 놓고 → 무게 측정 → 제품 선택 → 리필 시작”이라는
단순한 3단계 과정이 나타났다.
내가 선택한 제품은 천연 고체 세탁세제였다.
- 용기 무게 측정 후
- 화면에서 원하는 중량을 선택하면
- 하단 노즐에서 정제형 세제가 자동으로 용기 안에 떨어진다.
그 옆 칸에서는 고체 치약과 유칼립투스 비누, 고체 샴푸바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모두 소분 단위로 구매 가능하며, 플라스틱 포장은 일절 제공되지 않았다.
자판기 결제는 현금, 카드, 모바일 앱까지 모두 지원됐고,
구매한 내역은 이메일 영수증으로 받을 수도 있었다.
모든 과정은 3분 이내에 끝났고,
실천자는 기다림이나 대면 없이 실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서
제로 웨이스트 여행이 기술과 결합했을 때,
실천이 얼마나 구조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3. 여행자 중심 도시의 실천 설계 – 자동화가 만든 ‘비의도적 실천’
베를린 시는 2023년 이후
Refill Automat을 중심으로 주요 관광지, 기차역, 대학교, 공공도서관에 자판기를 확대 설치하고 있다.
이 자판기의 목적은 단지 편리한 구매 수단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소비 문화를 실천 가능성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자판기에서 물건을 고르며
자연스럽게 개인 용기를 꺼내는 여행자들의 모습은
더 이상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그곳에서는 ‘리필’이라는 행동이
의식적인 실천이 아닌, 도시가 제공하는 정상적인 소비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다시 말해,
실천자가 애쓰지 않아도
그 도시에 머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실천을 하게 되는 구조가 완성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는 국내 여행지와 매우 대조적인 장면이었다.
한국에서는 리필 생필품을 찾기 어렵고,
있더라도 영업시간과 위치 제약이 커
여행 중에는 실천이 무너지기 쉽다.
베를린의 리필 자판기는
그런 무너짐을 방지하는 ‘기계 기반 루틴 유지 장치’였다.
기술이 실천을 돕는 방향으로 사용될 때
여행자의 행동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시스템은 제로 웨이스트 여행이 미래형 소비 구조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4. 제로 웨이스트 여행자의 도구 사용 방식이 바뀌는 순간
자판기라는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제로 웨이스트 여행자도 새로운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어떤 도구를, 어떤 방식으로 꺼낼 수 있을까?”
베를린 리필 자판기를 경험한 후
내 도시락통과 유리병의 쓰임은 더 다양해졌다.
식사나 간식뿐 아니라
- 세제,
- 비누,
- 입욕제,
같은 생활용품까지 담을 수 있게 되면서
도구를 구성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실천 루틴도 확장되었다.
기차를 타기 전 리필 자판기를 들러
여행 중 쓸 고체 샴푸를 구매하고,
다 쓴 텀블러를 자판기 옆 세척 공간에서 세정한 뒤
바로 옆 정수기에서 물을 채우는 루틴은
전혀 복잡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여행을 설계할 때
호텔 근처에 리필 자판기가 있는지 먼저 검색한다.
그 경험은 단순히 편해서가 아니라
실천이 흐트러지지 않고 반복될 수 있다는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베를린은 그 구조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 구조 덕분에
실천은 더 이상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허락한 반복 가능한 행동이 되었다.
5. 마무리
베를린의 리필 자판기는 제로 웨이스트 여행자에게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천을 이어가게 만드는 도시의 태도이자 구조적인 응답이었다.
자판기를 통해 여행자는 더 이상 매장을 찾아 헤매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루틴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실천은 결심이 아니라 반복 가능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반복은 도시가 만들어주는 구조 안에서 훨씬 단단해진다.
앞으로 우리가 여행지를 고를 때,
리필 자판기의 유무는 실천 지속성을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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