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준비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혹시 모르니까’라는 이유로 짐을 늘린다. 여벌 옷, 예비 간식, 여분의 세면도구까지 챙기다 보면 캐리어는 터질 듯하고, 결국 여행 중 반도 쓰지 않은 짐만 끌고 다니게 된다. 나는 이번에 이런 여행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기로 했다. 짐을 줄이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여행. 단 하나의 소형 배낭만으로, 1박 2일간 강릉을 제로 웨이스트 방식으로 여행해보기로 한 것이다.
‘가볍게 떠나기’는 단순히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것을 넘어서, 제로 웨이스트 여행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쓰레기를 줄이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방법은 ‘애초에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적은 짐으로 떠나는 이번 여행은 내가 얼마나 ‘비우는 데 익숙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이기도 했다.
강릉은 선택이 아니라 전략이었다. 서울에서 KTX로 2시간이면 닿고, 도보만으로 해변, 시장, 카페, 숙소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게다가 강릉에는 비건 음식, 로컬 푸드 시장, 일회용품 없는 게스트하우스까지 있어 제로 웨이스트 여행자에게 가장 현실적인 목적지라고 판단했다. 이 글은 준비부터 짐 구성, 실제 여행 루트, 그리고 예상 밖의 에피소드까지 모두 담은 실전형 여행기이자 실천기록이다.
1. 20L 배낭 하나에 담은 ‘필요한 만큼만’ – 실전 짐 구성
가방은 20L 크기의 가벼운 블랙 등산 배낭. 노트북 수납공간 하나, 외부 포켓 2개가 전부인 기본적인 구조였다. 일반 여행자라면 ‘하루치 짐’이라고도 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피지만, 제로 웨이스트 여행자에게는 충분했다.
실제 짐 구성 리스트
① 세면·위생용품 (고체 중심)
- 고체비누 1개 (샴푸+세안+바디 겸용)
- 고체치약 알약 6알 (1일 2회 기준 + 예비)
- 대나무 칫솔 1개
- 면 손수건 1장 (땀 닦기, 포장 대체용)
- 천 수건 1장 (샤워용)
- 면 생리대 1장 (예비용)
- 생분해 수세미 1장 (도시락통 세척용)
- 작은 방수 파우치 (습한 세면도구 분리용)
② 식사용 도구
- 접이식 텀블러 1개 (실리콘 재질, 350ml)
- 스테인리스 수저 세트 (젓가락, 포크, 숟가락)
- 실리콘 뚜껑형 도시락통 1개
- 천 냅킨 1장 (테이블 닦기 겸 비닐 대체)
③ 의류
- 기능성 반팔 티셔츠 1벌 (착용)
- 속옷 & 양말 여벌 1세트
- 경량 레깅스형 바지 1벌
- 방풍 자켓 겸 우비 1벌 (경량, 접이식, 방수 겸용)
- 수면 양말 1켤레 (게스트하우스용)
④ 기타
- 접이식 장바구니 1개
- 생분해 쓰레기봉투 2장
- 휴대폰 + 충전기 + 보조배터리
- 소형 수첩 + 펜
- 기차표 출력본 + 현금 소량
-> 총 무게: 약 4.3kg
짐을 다 싼 후에도 배낭 안에는 여유 공간이 남았다. 심지어 초콜릿 1개, 사과 1개도 여유롭게 들어갔다.
2. 실제 여행 동선 & 제로 웨이스트 실천 포인트
이번 여행의 핵심은 강릉 시내 중심부에서 도보로 모든 걸 해결한다는 점이었다. KTX 강릉역, 중앙시장, 안목해변, 커피거리, 숙소가 모두 2km 반경 안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이동 동선 자체가 제로 웨이스트 실천을 더욱 쉽게 만들었다.
1일차
- 08:01 서울역 출발 KTX (텀블러에 커피 구매 후 탑승)
- 10:13 강릉역 도착 → 도보로 숙소 방향 이동
- 10:45 중앙시장 방문
- 닭강정 → 도시락통에 포장
- 찰떡 → 손수건에 싸서 보관
- 야채전 → 종이포장 제안, 거절 후 직접 담음
시장 상인은 “용기 가져온 사람은 처음 본다”며 호기심을 가졌고, 대부분 기꺼이 협조해줌.
대화가 제로 웨이스트 실천의 첫걸음임을 실감.
- 13:00 숙소 체크인 – ‘일회용품 미비치’를 안내한 친환경 게스트하우스
- 샴푸, 치약, 수건 제공 없음 → 모든 준비물 직접 사용
- 고체비누 사용 후, 메쉬 파우치에 넣어 잘 건조
- 15:00 안목해변 산책
- 해변 앞 제로 웨이스트 인증 카페 방문 → 텀블러 사용으로 할인
- 바람이 강해 방풍 자켓 착용, 우산 없이도 충분히 이동 가능
- 19:00 숙소 복귀 → 수세미로 도시락통 세척 후 건조
- 생분해 쓰레기봉투에 음식물 찌꺼기 분리
- 수건과 옷은 빨래망 대신 바람 부는 창가에 널어 자연 건조
2일차
- 07:30 숙소 체크아웃 – 방 정리 & 쓰레기 회수
- 08:00 커피거리 산책
- 텀블러로 테이크아웃, 천 냅킨으로 컵받침 대체
- 일회용 빨대 거절, 입으로 마시거나 개인 빨대 사용
- 09:30 월화거리 구경 – 노상 쓰레기통 거의 없음 → 쓰레기 직접 회수
- 11:00 기차 타기 전 시장에서 유부초밥 & 간식 구매
- 모든 포장 도시락통에 담아 해결, 일회용 안씀
- 13:00 서울행 KTX 탑승 → 도시락 꺼내 먹고, 수저 세척은 집 도착 후 진행
3. 가볍고 지속가능했던 순간들 – 제로웨이스트 여행의 장점 & 불편함 정리
좋았던 점
- 짐이 가볍고 이동이 자유로움: 강릉 시내 전체를 도보로 이동했는데도 피로감이 거의 없음
- 일정이 유연함: 체크인 전에도 짐 맡길 필요 없이 어디든 갈 수 있음
- 쓰레기가 거의 생기지 않음: 기차 내에서 생긴 종이 포장 외에 플라스틱은 하나도 발생하지 않음
- 소통의 기회: 도시락통과 텀블러를 꺼낼 때마다 상인, 직원과 대화 발생 →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인식 확산
불편했던 점
- 시장 음식 종류에 따라 도시락통 용량 부족
→ 야채전은 통에 다 안 들어가 남은 건 바로 먹음 - 고체비누가 습도 높은 날엔 녹아내림
→ 다음엔 더 빠르게 건조되는 형태로 바꿔볼 예정 - 카페 중 일부는 텀블러 사용을 아예 거절
→ 아이스 음료는 빨대만 사용하거나 구매하지 않음
4. 여행 후 변화한 습관 – 짐뿐 아니라 마음도 가벼워졌다
여행 이후, 내 일상에도 확실한 변화가 생겼다.
일회용 수저를 더 이상 받지 않고, 손수건을 휴지 대신 쓰고, 커피를 마실 때 텀블러를 자동으로 챙기게 됐다. 여행을 통해 불편함보다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감각이 생긴 것이다.
‘짐을 덜어내면 삶도 가벼워진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무게는 가볍고 기억은 깊어지는 여행이 있었다.
이 1박 2일은 단순한 실천이 아니라, 나에게 지속 가능한 삶을 실험하고 체험한 시간이 되었다.
마무리 – 미니멀 제로 웨이스트 여행은 누구나 시도할 수 있다
소형 배낭 하나로, 짐을 줄이고 쓰레기를 줄이고 이동의 자유까지 얻은 이번 여행은
‘나 같은 평범한 여행자도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다.
강릉처럼 도보 이동이 가능하고, 상인들이 열린 도시라면 더욱 쉽게 실천이 가능하다.
짐을 줄이는 건 단지 가방을 가볍게 하는 일이 아니라,
불필요한 소비와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삶의 태도다.
다음 여행도 배낭 하나면 충분하다. 가벼운 배낭 속에 담긴 건 짐이 아니라, 가치 그 자체였다.
'제로웨이스트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로 웨이스트 여행 중 가장 불편했던 순간 7가지와 그 해결법 – 실제 경험에서 나온 현실 실천 가이드 (0) | 2025.07.05 |
---|---|
제로웨이스트 숙소 고르기 - 쓰레기 없는 여수 여행 1박 2일편 (0) | 2025.07.05 |
비 오는 날의 제로 웨이스트 여행 – 우비, 방수용기, 대체 아이템 추천 완전 가이드 (0) | 2025.07.04 |
이동수단별 제로 웨이스트 여행 가방 구성 전략 – 버스/기차/자차 여행자 맞춤 팁 (0) | 2025.07.03 |
국내여행을 위한 제로 웨이스트 파우치 구성편 – 세면도구, 위생용품 완전 가이드 (0) | 2025.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