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웨이스트 여행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인상 깊은 장소나 환경 운동 이벤트,
플로깅 같은 특별한 경험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천자에게 진짜 ‘기억에 남는 순간’은
그렇게 거창한 장면이 아니다.
무의식처럼 흘러가던 순간이 ‘멈춤’으로 바뀌는 때.
그 짧은 찰나가 실천의 진짜 핵심이고,
때로는 여행 전체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2025년 5월, 독일 베를린.
나는 평소처럼 도시락통을 가방에 넣고, 손수건을 셔츠 주머니에 꽂은 채
도시를 걷고 있었다. 특별한 일정이 있던 날도 아니었고,
거창한 캠페인에 참여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베를린 미테(Mitte) 거리 한복판에서
나는 쓰레기통 앞에서 3초간 멈췄고,
그 3초가 이 여행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았다.
이 글은 그 3초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이 왜 실천자의 마음을 그렇게 깊이 흔들었는지에 대해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실천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선택의 반복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쓰레기통 앞에서 멈춰선 3초. 그 짧은 순간이 왜 제로 웨이스트 여행자에게 가장 인상 깊었는지 이야기한다.
1. 그날의 평범했던 흐름 – 제로 웨이스트 여행의 실천은 이미 ‘루틴’이 되어 있었다
그날 오전, 나는 베를린 시내 중심에 위치한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지역의 마켓을 둘러보고
유기농 베이커리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샀다.
가게 직원은 샌드위치를 종이 포장지에 담으려 했고,
나는 익숙하게 도시락통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Could you use this instead?”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담아주었다.
그게 내겐 너무 익숙한 루틴이었다.
텀블러, 도시락통, 손수건, 생분해 봉투.
이미 내 실천은 의식이 아닌 습관처럼 굴러가고 있었고,
나는 그걸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걷다 보니 한 공원 벤치가 보여 거기 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날 따라 날씨가 좋아서
사람들이 많았고, 벤치 주변은 꽤 어지러웠다.
누군가 먹고 남긴 종이컵, 얼룩진 냅킨, 음식 포장지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나는 도시락통을 꺼내 식사를 마치고,
내용물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거기까지는 완벽한 루틴이었다.
2. 쓰레기통 앞에서의 3초 – 잠깐의 멈춤이 던진 질문
식사를 마치고 도시락통 안에 있던
종이 영수증 하나를 꺼냈다.
가방을 열고 생분해 봉투를 찾으려 했는데,
그날따라 백팩 안이 너무 뒤죽박죽이었다.
문득 시야 왼쪽에 거리용 분리수거 쓰레기통이 보였다.
빨간색 플라스틱 뚜껑 위에는 ‘Papier’라고 적혀 있었다.
독일은 분리수거 문화가 잘 돼 있는 나라다.
‘이거 하나쯤은 저기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내 손엔 가볍고 얇은 종이 한 장.
내 앞엔 쓰레기통.
나는 딱 3초 동안 멈춰 있었다.
그 3초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1초 – 이건 재활용 쓰레기야. 독일 시스템이면 잘 처리될 거야.
2초 – 그래도 난 원래 생분해 봉투에 담아 돌아가는 사람이었잖아.
3초 – 이건 쓰레기를 버리는 문제가 아니라, 실천을 이어가는 문제야.
나는 결국,
종이 영수증을 도시락통 안에 다시 넣고
가방 안에서 생분해 봉투를 꺼내
그 안에 고이 담았다.
그리고 다시 가방을 닫는 데
그때야 비로소 내가 왜 이 순간이 인상 깊었는지를 알게 됐다.
3. 진짜 실천은 ‘남들이 안 보는 순간’에 드러난다
그때 나는 혼자였다.
누구도 내가 그 쓰레기통 앞에서 3초간 고민했는지 알지 못했다.
SNS에 올릴 인증 사진도 없었고,
그건 그저 아주 평범한 여행자의,
아주 사소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아무도 안 보는 순간에 했던 선택이
내 실천의 진짜 정체를 보여줬다.
사람들 앞에서 도시락통을 꺼내는 것보다
사람들 없는 골목에서 쓰레기를 되가져오는 것이 더 어렵다.
의식적인 실천이란
그 누구도 보지 않아도
내가 왜 이걸 하는지를 나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날 나는 그 3초 덕분에
내 실천이 얼마나 나에게 단단히 자리를 잡았는지 확인했고,
동시에 ‘언제든 흔들릴 수 있구나’는 겸손도 함께 배웠다.
4. 제로 웨이스트 여행의 실천은 무너지지 않는 게 아니라, 다시 고쳐 세우는 것이다
그 3초의 고민은 실패가 아니었다.
오히려 실천을 되돌아보게 만든 아주 값진 장면이었다.
만약 내가 그때 영수증을 그냥 버렸다면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고,
시스템적으로도 잘 처리됐을 것이다.
하지만 실천이란 건
결과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내가 실천을 이어가기로 결정한 건
‘완벽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방향 안에서 계속 움직이기 위해서다.
실천은 무너지지 않는 게 아니다.
흔들리는 순간마다
다시 고쳐 세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건
화려한 장비나 커다란 결심이 아니라,
내 손 안에 든 생분해 봉투 한 장과
쓰레기통 앞에서의 3초 같은
작고 조용한 행동들이다.
마무리 – 제로 웨이스트 여행의 실천은 어떤 장면이 아니라, 내가 내린 선택이다
베를린에서의 그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날도,
가장 거대한 실천을 한 날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하루가
여행 전체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그 안에 내가 실천을 이어가기로 다시 선택한 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나는 종종 쓰레기통 앞에서 멈추고,
가방 속을 다시 열고,
도시락통을 손에 쥐고,
손수건을 꺼낸다.
이제는 그게
누군가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게 나의 선택이고,
내 여행의 방식이며,
내 삶의 루틴이기 때문이다.
실천은 어떤 장면이 아니라,
그 장면 속에서 내가 내린 아주 작은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쌓일수록
내 삶도 조용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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