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 제로 웨이스트 여행 루틴 안에 실천을 설계하다
제로 웨이스트 여행은 특별한 의식이 아니라,
여행자의 하루 일상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을 때,
그 도시의 제로 웨이스트 실천 구조를 전혀 모른다면,
개별적인 선택만으로 지속 가능한 행동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는
여행자에게 동선 중심의 제로 웨이스트 루틴 설계가 가능한 도시다.
작은 도시 구조와 도시 전체의 친환경 정책,
리필숍, 다회용기 사용 카페, 대중교통 중심의 생활 흐름이
실천이 부담이 아닌 습관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글에서는 프라이부르크를 여행하며 직접 체험한
제로 웨이스트 하루 루틴을 시간대별로 소개한다.
이를 통해 낯선 도시에서도 실천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적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아침 8시 – 시장에서의 리필 식사 준비
하루의 시작은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앞 마르크트 광장(Münsterplatz)에서 열린 아침 파머스 마켓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지역 농부들이 당일 채소, 빵, 유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대부분의 상인들이 다회용 포장 또는 고객 용기 사용을 기본으로 한다.
리유저블 천가방이나 도시락통만 가져가면
빵, 치즈, 과일을 일회용 없이 구매할 수 있다.
특히 이 마켓은 리필 장터가 운영되는 날이면,
생견과류, 시리얼, 잼 등도 유리병 또는 텀블러에 담아 구매 가능하다.
영어로 ‘no plastic’이라고만 말해도
상인들이 자연스럽게 손님이 용기를 꺼낼 시간을 기다려준다.
근처에 위치한 작은 공원 벤치에서
자신이 담아온 용기에 담긴 빵과 과일로 아침을 먹으면,
하루의 시작부터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는 실천 루틴이 완성된다.
이처럼 프라이부르크에서는 식사 자체가
제로 웨이스트 실천의 일부가 된다.
3. 낮 12시 – 대중교통과 공유컵 카페 체험을 통한 제로 웨이스트 여행
프라이부르크는 자전거와 트램 중심의 도시다.
걷거나 트램을 이용하면 도시의 대부분을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쓰레기 없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정오 무렵, 트램을 타고 Bertoldsbrunnen 광장 부근에 위치한
친환경 인증 카페에 도착했다.
이 카페는 ‘FreiburgCup’이라는 지역 공유 다회용 컵 시스템에 참여 중이다.
컵 하나당 보증금은 약 1유로이며,
이 컵은 시내의 거의 모든 제휴 카페에서 반납 또는 재사용이 가능하다.
즉, 한 카페에서 받은 커피를 마신 후
다른 카페에 반납만 해도 보증금이 환불된다.
컵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개인 텀블러 없이도 일회용 없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구조다.
이곳에서 점심은 지역 유기농 식재료로 구성된
비건 샐러드를 ‘내 도시락통’에 담아 테이크아웃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여행 루틴 안에서 ‘식사 + 카페’가
일회용 없이도 충분히 실천 가능한 활동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4. 오후 3시부터 저녁까지 – 리필숍, 플로깅, 공공시설 활용
오후에는 Vauban 지역으로 이동해
프라이부르크의 대표 리필숍인 ‘Unverpackt’ 매장을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건식 식품, 세제, 욕실용품을
자신이 가져온 용기에 무게를 재고 담을 수 있도록 운영된다.
특히 여행자를 위한 미니 리필 키트 코너가 마련되어 있어,
이동 중 필요한 만큼만 소분해서 구매 가능하다.
잠시 산책 겸 근처 공원에서 진행 중인 시민 플로깅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공공기관이 제공한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사용해
산책 겸 쓰레기를 줍는 이 활동은
매주 열리며, 여행자도 신청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저녁 무렵에는 도서관이나 트램 정류장 근처의
공공 반납용기 스테이션에 사용한 컵을 반납했다.
도시 전역에서 회수함이 운영되어 있어
사용한 공유컵이나 다회용 도시락 용기를 쉽게 회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처럼 프라이부르크에서의 하루는
일회용 없이도 식사하고, 이동하고, 휴식하고, 실천하는 루틴이 가능했다.
개인이 특별히 준비한 도구 없이도,
도시의 구조 안에서 여행자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유도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프라이부르크에서의 하루 루틴을 마치고 나면,
이 도시가 단순히 친환경적인 정책을 펼치는 도시라기보다는
일상 자체가 실천의 구조로 짜인 곳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여행자는 ‘무언가를 실천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도
도시에서 제공하는 구조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도 충분히 지속 가능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이러한 도시 설계는 여행자뿐 아니라 시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프라이부르크의 주민들은 일회용 대신 공유 컵을 쓰고,
리필숍에서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고,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는 생활 방식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 여행자도 무리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도시가 실천을 유도하는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여행자 중심의 실천 루틴을 설계할 때
프라이부르크처럼 도시의 이동, 소비, 휴식, 정보 제공 공간을
실천 흐름과 연결짓는 방식이 필요하다.
여행자가 도시의 환경 정책을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체험할 수 있을 때,
제로 웨이스트 여행은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기본 흐름이 된다.
궁극적으로 프라이부르크의 하루 루틴은
개인의 의지보다 도시의 구조가 실천을 얼마나 뒷받침해주느냐에 따라
제로 웨이스트 여행의 지속성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행자가 더 이상 짐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도시가 마련한 흐름 속에서 가볍게 실천을 이어갈 수 있도록
환경 설계와 루틴 기반 실천 구조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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